재난 상황에서 ATM/현금 사용이 어려울 때를 대비한 계획
금융 시스템이 멈출 수 있다는 현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금융 활동은 ATM, 은행 창구, 카드 결제 망, 모바일 뱅킹 같은 전자적 인프라에 의존한다. 하지만 재난 상황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이 순식간에 마비될 수 있다. 2022년 폭우로 서울 일부 지역이 침수되었을 때, 현금 인출기와 카드 단말기가 동시에 작동하지 않아 주민들이 편의점에서 물과 음식조차 쉽게 구입할 수 없었다. 또한 대규모 정전, 통신 두절, 사이버 공격 같은 상황은 은행 서버 자체를 마비 시킬 수 있으며, 이 경우 현금 인출과 카드 결제가 모두 불가능하다. 결국 재난 시 금융 서비스의 의존도가 높을수록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맥락에서, 개인과 가정은 단순히 물과 식량만 준비할 것이 아니라, 비상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재정 플랜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글에서는 실제 재난 시 금융 시스템 붕괴에 대비하는 다층적 전략을 살펴본다.

재난 시 현금보다 중요한 유동성 자산 준비
많은 사람들은 재난 대비로 일정 금액의 현금을 집에 보관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체험담을 보면, 현금이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이 많다. 첫째, 물품 공급이 끊기면 돈이 있어도 살 수 있는 것이 없다. 둘째, 거래 자체가 현물 위주로 전환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태풍 이후 식수와 건조식품을 가진 사람은 작은 금액의 현금보다 생필품과 교환하는 거래를 선호한다. 따라서 재정 플랜의 핵심은 단순 현금 보유가 아니라 유동성 있는 자산과 교환 가능한 물품 확보다.
예를 들어, 장기 보관이 가능한 작은 포장 단위의 생수, 즉석 식품, 건전지, 휴대용 연료, 담배, 커피, 초콜릿 같은 기호품은 재난 상황에서 사실상의 화폐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소액권 현금(1천 원, 5천 원 단위)을 분산 보관하는 것이 중요하다. 큰 금액의 현금은 오히려 거래에 불편을 주거나 도난 위험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체험자들의 경험은 “현금보다 작은 생필품 묶음이 더 빨리 거래되었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디지털 금융 마비 대비: 다변화 전략 필요
재난이 길어지고 도시 기능이 마비되면 단순 현금 보관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따라서 개인의 재정 플랜은 다변화 전략을 포함해야 한다.
첫째, 가족 단위 비상 공동기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 각각이 소액을 나눠 보관하면 분실과 도난에 대한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 둘째, 대체 결제 수단을 고려해야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재난 시 선불카드나 교통카드가 거래 수단으로 쓰인 사례가 있다. 카드 단말기가 작동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교통카드를 현금 가치로 인정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 디지털 자산(암호화폐 등)은 평상시 분산 자산으로 유용할 수 있지만, 재난 상황에서 전기와 통신이 끊기면 접근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를 생존형 자산으로 삼는 것은 위험하며, 오히려 분산 투자 차원에서만 고려해야 한다. 넷째, 해외 송금 네트워크나 지인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해 두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해외에 거주하는 친척이 있다면 위기 시 긴급 송금을 요청할 수 있지만, 이 역시 통신망이 정상 작동해야 가능하다. 결국 핵심은 “다양한 수단을 혼합해 준비하고, 어떤 한 가지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종합 플랜: 개인 맞춤형 비상 재정 전략
재난 상황에서의 재정 플랜은 단순히 돈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지속할 수 있는 자원 확보 체계로 설계해야 한다. 우선, 가정 내에는 최소 1주일간 자급할 수 있는 생필품과 소액 현금을 반드시 비축한다. 이때 현금은 방수 지갑이나 내화 금고에 보관하며, 필요 시 빠르게 휴대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생활 필수품을 화폐처럼 교환할 수 있도록, 물·식량·건전지·위생용품을 분산 보관해둔다. 세 번째, 가족 간에는 “재난 시 재정 협력 규칙”을 세워두어, 누구나 긴급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공동 기금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네 번째, 금융 시스템이 장기적으로 마비될 가능성에 대비해, 신뢰할 수 있는 지인 네트워크와 교환 관계를 사전에 구축해두는 것도 중요한 전략이다. 마지막으로, 정기적으로 재난 대비 물품과 현금 보유 상황을 점검하며, ‘비상 자산 점검일’을 가족 달력에 표시해 두는 습관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ATM이나 현금 인출이 불가능한 상황은 결코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실제로 여러 재난 사례에서 현금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단순히 돈이 아니라, 현금·생필품·네트워크를 아우르는 생존형 재정 플랜이다.